[한국인권신문] 서울시는 지난 2009년부터 ‘터널 보행환경 개선’ 사업으로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시민의 불편은 해소하지 못한 채 헛공사로 혈세만 낭비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8월 터널 보행환경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정릉동 북악터널에 6억 원을 들여 보행통로와 안전펜스를 설치해 개통했다. 정릉동과 평창동 주민이 교류할 수 있는 보행통로를 제공해 도로시설물로 인한 시민불편사항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동안 북악터널은 보행통로가 별도로 없어, 주민들은 터널점검로를 이용하는 불편함을 겪어왔다. 그러나 이번 개선 사업으로 안전한 보행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공사 후에도 여전히 터널을 이용하는 주민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일부 배낭을 멘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걷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띌 뿐이었다.

근처 K 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남, 2학년) 씨로부터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터널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없었던 이유는 위험한 보행로가 아니라, 매연 때문이었다.

김모 씨는 “터널 속을 걸어가면 옷에 시커먼 먼지들이 묻고 목과 눈이 따가워서 친구들도 이용하지 않는다”며 특히 “여학생들은 먼지 때문에 얼굴 피부와 옷을 걱정해 절대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터널 내부를 확인해 보니, 전보다 훨씬 밝은 조명과 튼튼해 보이는 안전펜스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소음과 매연 차단을 위한 방음벽은 미설치된 상태였다. 더욱이 보행로 건너편은 바닥 여러 곳이 파여 돌조각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새롭게 선보인 지 한 달이 지난 모습이다.



 
터널 속의 공기는 차량의 배기가스인 산화질소,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외에 중금속이나 발암물질을 포함한 미세먼지와 방향족탄화수소 등이 다량으로 농축돼 있다. 공기 순환이 어려워 외부 대기의 오염물질보다 수백 배가 넘는 양이다.

이러한 오염물질들은 호흡기 질환은 물론, 장시간 노출되면 심장질환과 뇌졸중을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노인이나 어린아이들의 경우 건강에 더 치명적이다.

터널 내 오염도를 낮추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대처는 저감장치를 확대 설치하거나 대중교통의 친환경 연료 사용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 때문에 지금 당장 시행할 수 없다면 △오염 수치에 따라 통행을 제한할 수 있는 안전경보 시스템 마련 △터널 보행에 관한 환경부의 적합성 판단 및 결과 공개 △터널 보행 시 건강을 해칠 수 있고, 특히 어린이, 임산부, 노인 등 노약자의 출입을 자제하도록 알리는 안내판 설치 등이 바람직한 대안일 수 있다.

북악터널은 길이 810m, 너비 10m인 2차선 도로다. 서울 동북부지역과 서북부지역 간의 주요 연결 통로로 교통량이 적지 않다.

북악터널을 보행하는 5분 동안, 주민들은 온갖 오염물질에 노출되고 흡입하게 된다. 안전한 보행로까지 마련됐으니 100m 달리기를 하는 개구진 아이들의 모습도 연상된다.

특히 늦가을이나 초겨울에는 대기의 순환이 잘 이뤄지지 않아 터널 속의 공기오염이 더욱 심각해진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돌고 있다. 서울시는 주민들에게 북악터널의 보행 권유를 중단하고 오염도를 정확히 측정해 적절한 저감대책이나 추가적인 보완시설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번 공사로 개선된 시설이 대기오염까지 막아주진 못한다. 그럼에도 쾌적한 환경개선을 내세운 홍보로 주민을 안심시킨다면, 주민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오히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보행을 삼가도록 홍보하는 것이 서울시의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민원을 잠재우기 위한 급한 시정보다는 시민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민을 위한 더 넓은 안목과 배려가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