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권신문=차소연]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시민 4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연일 발생하는 ‘묻지마 범죄’로 국민의 불안이 고조에 달하고 있다.
‘묻지마 범죄’는 예고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장소를 불문하고 발생한다. 따라서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 특히 과거 단순한 폭행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묻지마 범죄’의 유형이 변해가고 있다. 무엇보다 “나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국민들을 더 큰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한편 이러한 범죄는 우리 사회가 선진화로 접어들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묻지마 범죄’는 전형적인 선진국형 범죄 유형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선 이미 20년 전부터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어 왔다. 빠른 경제 성장으로 나타난 양극화 현상은 소외 계층을 양산하고 그들이 품은 사회에 대한 불만은 흉악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연쇄 살인, 아동 성폭행, 아동 유괴 살인, 친족 살인 등도 사회와 단절된 채, 자신의 초라한 처지를 비관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는 이들의 처벌을 놓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해 사형으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반면 범죄 사실만으로는 사형이 마땅하지만, 우리 사회도 일부 책임을 느낄 필요가 있다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이것은 범죄자들의 인격 파탄이 우리 사회의 만연한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연구결과에 따른 것이다.
때로는 인권에 대한 질책이 나오기도 한다. 범죄자의 인권이 피해자의 생명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범죄자에 대한 지나친 인권보호가 형량을 낮추고 그로 인해 죄의식이 결여돼 추가 범행을 저지른다는 지적이다.
사실 보편적 인권이 성폭행에 저항하는 여성을 살해한 범죄자까지 적용돼야 하는가에 의문을 갖게 한다. 살인자의 불행한 성장 환경을 이유로 범죄 사실을 온정(
溫情)으로만 볼 수 없다. 권리 행사와 의무 이행으로 인권은 보편적 가치를 가진다. 타인의 인권과 생명을 한순간에 짓밟아 버린 행위는 인권을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겐 가혹할지라도 선별적 인권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신상 공개, 전자 팔찌 착용, 화학적 거세, 사형제 등은 범죄자에 대한 인권 침해를 이유로 시행에 있어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범죄 행각은 이러한 논란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유 없는 살인과 폭력은 이성적·객관적 판단마저 흐리게 만들어 버렸다. 그만큼 최근 범죄가 사회질서 유지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는 공통된 인식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자칫 개도(開導) 가능한 범죄까지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사회적 합의가 돌출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강력 범죄에 대해 선별적 인권을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선별적 인권이 국민의 불안을 다소 진정시키고, 이러한 심리적 효과는 우리 사회가 다시 이성적 판단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을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하지만 종교적 인권과 사회적 인권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종교적 인권은 보편적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며 사회·시대 변화에 유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 인권은 인권적 환경과 사회 구성원의 합의에 따라 권리와 책무 및 가치가 달라진다. 이러한 차원에서 종교적 인권이 무조건적인 가치라고 한다면, 사회적 인권은 조건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보편적 인권은 인간이 구현하고자 하는 이상적 가치다. 종교적 인권 차원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인간에게 강요하는 것은 애초에 실천 불가능한 과제일 수 있다. 보편적 인권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구성원이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자는 목표를 위한 노력이다. 따라서 보편적 인권의 실천 과정에서 때론 선별적 인권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우리 사회의 공동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상을 등진 외로운 외톨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소통할 수 있도록 적절한 사회복지와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 경제 발전에 집중된 정책이 낳은 냉엄한 경쟁구조를 인간 친화적인 구조로 바꿔야 한다.
인간다운 삶의 가치는 인간의 존중에서 시작된다. 인간 존중의 실천이 곧 인권의 실천이다. 비록 우리 사회가 보편적 인권이 실현되기엔 미성숙된 인권적 환경과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보편적 인권을 위한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단 현실을 무시한 이상(理想) 추구는 실현과정에서 더 많은 갈등과 혼란을 불러온다. 따라서 이쯤에서 선별적 인권의 사회적 효과에 대해 신중한 고민과 검토는 의미 있는 노력이 될 것이다.
